어렵게 성당을 갔다.
일요일 마다 성당을 가야 하나 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며 아침 시간을 보낸다. 어서 빨리 결정해야 9시 미사에 참여할 수 있다. '성당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런 투정을 하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사람들하고 가능한 덜 섞이기 위해 9시 정각에 늦게 출발한다. '과연 이것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오늘은 게으름을 피우다가 11시 미사를 가게 되었다. 맨 뒤에서 간의 의자를 찾아서 조심스럽게 앉는다. 억지스런 일을 할 때 느껴지는 고통스런 간지러움이 올라온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투자에 실패한 이후 우리 가족은 연달아 고통을 겪는듯 했다. 딸 아이는 우울증 및 공황장애로 힘들어 했다. 그리고 결국 학교를 그만 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아들은 본인이 정말 싫어하는 군대를 가야 했다. 다행이도 육체적으로 조금 편한 공군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가기전에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아들은 조용히 기절을 했다. 강한 전기 쇼크를 받은 것 처럼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쓰러 졌다. 다행이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미주신경성 실신'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언제 기절할지 모르니 앞으로 긴장하면서 살아야 한다. 아이들을 치료하느라 아내는 병원을 예약하고 따라 다니느라 에너지가 늘 모잘랐다. 모든 것이 내 탓 같아 늘 가슴이 아프고 어두웠다.
항상 '해결 의식'이 강한 내 성격은 가만 있질 못 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릴적부터 힘들 때 했던 '하느님'을 찾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성당을 갔다. 1층에는 못 들어가고 2층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 왔다. 그리고 기도했다. 가족들에게 힘을 주세요!
거짓말처럼 딸은 나아가고 있다.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도 합격했다. 아들은 성남 공군비행장으로 배치 받아서 나름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나'였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투자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되는것 같았는데 결국에는 다 없어졌다. 너무 비참했다. 이혼을 각오로 아내에게 말해야 했다. '너무 괴롭다고!'
아내는 마치 알고 있는 것 처럼 대책을 세워 보자고 했지만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 같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많이 받아 놓은 상태인데 또 다른 대출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너무 미안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또 기도 밖에 없었다. 도와 달라고 묵주 기도를 수도 없이 했다. 대출이 불가능했는데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대출 받은 액수 만큼 대출이 이루어 졌다. 10번 중에 9번 거절이었고 마지막 '1번' 이 가능했다. 그러나 대출 과정은 너무 까다로웠다. 성격이 무던한 아내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마치 '한번 더 대출을 받으면 각오해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 잘 해라!'를 강하게 일깨워 주었던 과정이었다.
그래서 난 성당에 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앞으로도 난 꾸역꾸역 성당을 나갈 것이다. 그리고 차분하게 현재의 나를 반성하고 가족의 행복을 기원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워 가고 있다. 내 자신을 일깨우는 여러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하고 있다. 감동적이게도 순간 순간 몹시도 소중한 깨달음이 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예정된 길이었던 것을... 앞으로 지구라는 학교에서 경험하게 될 생각과 느낌을 매일 일기를 통해 정리하고자 하고 가능하면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부족하지만 나의 일기를 시작한다.